코마키의 중심, 다시 말해 일본의 중심부에 위치한 노우비 평야 중심인 코마키야마에 대해 이 홈페이지를 보시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코마키 산성이 수행했다는 사실을 행운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란...?
그것에는 일본 역사상 아주 중요한 두 인물이 이 고마키 산성의 성립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3년~1582년).
그는 나고야의 출신이며, 좋든 나쁘든 저희 일본인에게는 일본 역사상 가장 임펙트를 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가문은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오와리(오와리尾張..그 당시 이 코마키도 포함한 나고야 지역의 지명입니다)지방의 무장 집단이었지만 그는 군사력에 그치지 않고 경제력 발전, 대단히 드문 천재적 두뇌를 써서 순식간에 성장하고, 전국 시대라 불리던 16세기 일본의 세상을 사실상 통일한 일본 역사상 최강의 사무라이와 말도 있습니다.
이 사실은 외국인 분이라도 일본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왜곡했다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오다 노부나가가 이 성을 1563년에 처음으로 이 코마키야마에 쌓았습니다.
그는 평생 많은 성을 옮겨 산 성주가긴 하지만, 이 코마키 산성에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설비를 만들었습니다.
자, 여기서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은 ”사무라이”가 살던 성이라고 하는 것은 돌담 위에 쌓아올린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겠지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예쁘게 생긴 돌담 위에 천수각(天守閣)이 우아하게 솟은 일본의 전형적인 성곽(예:나고야성(名古屋城), 오사카성(大阪城), 히메지성(姫路城), 쿠마모토성(熊本城) 등)은 모두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가 코마키 산성을 세운 16세기 중반 이후까지는 일본 성안에서 아직 천수각이라 불리는 건조물은 어디에도 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누추한 땅 위에 망루 역할을 하는 보루를 좀 훌륭하게 만들었겠죠.
그 시대에 오다 노부나가는 이 코마키 산성을 세울 때 산 정상에 뒤에 불리는 천수각과 같은 건조물 [그건 전술한 일본 굴지의 장려한 성에 비하면 빈약한 모습이었을 것이고, 다락지도 주변 발굴조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만..]을 세워 놀랍게도 그 아래에는 후년 상식으로 여겨지는 돌담(연속한 돌덩어리로 불리는 것이 진짜였을 것입니다)을 배치했다는 것입니다!
이 돌담은 코마키야마 안에 있는 돌멩이를 잘라낸 것이나 가까운 이와사키산(岩崎山)에서 잘라 옮겨온 것을 두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표면에 배치한 거석의 틈새나 뒤에도, 흙에서는 없고, 세세한 돌(”우라고메이시”라고 불립니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 많은 (특히 장마철의 장마나 가을의 태풍처럼 단기간에 대량으로 내리는 집중호우 등) 빗물이나 지진이 있어도 토대가 흘러내리거나 무너지는 일이 비약적으로 적어졌겠지요.
또 이 돌담은 21세기 들어 발굴 조사에 최소 3단 이상의 점점 건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이것은 이후에 보여드리는 상상도로, 충격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해설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처음으로 자신의 성(城)으로 세운 이 코마키 산성은 이 돌담뿐 아니라 중간까지 쭉 뻗어 천수각(天守閣)을 오르기 위한 중심가(오오테미치)와 산 정상에 세워진 건물(이 후 일본 내의 성에 출현하게 된 천수각(天守閣)을 건조한 것이 매우 획기적입니다.
그밖에도 성의 남쪽에 매우 기능적으로 만들어진
성시마을(조우카마치 城下町)등 그간의 중세의 성에는 없었던 본격적인 성을 이 고마키에 만들었습니다.
※2018년 발굴 조사에서는 정상 바로 밑에 공기나 건물, 품격 높은 건물 통로로 이어지는 옥석군 등 정상 부근에도 살고 있지 있다고 추측되는 중요한 매장물이 발굴된 뉴스나 신문 등에서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중요한 발견으로 성 전문가 여러분들께서는 이 코마키 산성이 일본 내에 속속 탄생하는 돌담과 천수각을 갖춘 본격적인 성곽(城郭)과 그 주변에 형성된 자우카마치의 선두주자가 된 것으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코마키 산성을 말할 때,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은 여러분도 충분히 알고 있다"장군", 근세에 300년의 오랜 세월에 걸친 아주 평화로운 일본 사무라이 사회였다"에도 막부(江戸幕府)"를 개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입니다.
전술한 오다 노부나가는 이 코마키 산성에서 4년 정도 살았습니다만, 그 후 1567년에는 옆의 기후 성(岐阜城)에 가고 그 후에 그의 살던 성에서 제일 잘 알려 진 아즈치 성(安土城)을 쌓아 넘어갔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코마키와 나고야가 있는 당시 이름으로 "오와리"라고 부르는 지명 동쪽에 위치한 "미카와(三河)"("오와리"과 "미카와"는 현재는 같은 아이치 현으로 되어 있습니다.)를 통치했으며 오다 노부나가는 그가 쿠데타로 사망한 1582년까지, 매우 견고한 군사 동맹 계약을 맺었고, 동서에 그들에게 지배하는 지역을 넓히기 위한 싸움에는 서로 자신의 군대를 출동시킨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사망후 그의 부하이자 일본역사상 가장 장대한 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사카성을 쌓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는 "타이코 상 太閤さん"이라 불리고, 일본에서는 가장 사랑받고 있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위업을 이어받아 이 일본을 통일했습니다.
사실 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반기를 든 오다 노부카츠(織田信雄 노부나가 아들)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나치게, 여기 코마키 산성에 전쟁의 베이스 기지를 설치하고, 북쪽에 위치한 이누야마성(犬山城)에 기초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1582년에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일본 역사상 유명한 싸움인 "코마키·나가쿠테의 싸움 小牧・長久手の戦い"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코마키에서는 대규모의 싸움은 결과적으로 없고, 같은 이 아이치현내의 코마키 동쪽의 나가쿠테시에서 양군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때 코마키 산성을 개수하는 바람에 오다 노부나가가 지은 천수각( 이고 즈넉한 산정의 건물)을 헐어 돌담을 다시 메워놓아 지금은 대부분의 돌담을 볼 수 없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코마키 산성에서 토루로 불리는 토굴의 공보리 등을 많이 설치했는데, 현재 코마키 산성 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 대부분의 돌담은 현재 볼 수 없다는 것은 현재 발굴조사에서 파헤쳐도 위험 방지와 돌담 보존을 위해 다시 메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곧 코마키야마 기슭에 "코마키 산성 사적 정보관(小牧山城史跡情報館)"(2019년 완공 예정)이 개관할 예정입니다.그래서 돌담의 레플리카도 전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작지만, 코마키야마 정상, 코마키 시 역사관(小牧市歴史館 이 건물은 50년 정도 전에 개인이 코마키 시에 기부됐으며 오다 노부나가가 세운 천수각을 충실히 재현하지는 않았다)의 발밑 정면 왼 아래에서 뒤까지 지금부터 455년 정도 전 오다 노부나가 건조 당시 돌담이 노두했으며 행복한 일로 여러분도 오다 노부나가도 언급한인 돌담에 실제로 뵙게 됩니다! 정상의 코마키 시 역사관 자체는 20세기 중 지날 무렵에 건축되고 역사적으로는 가치는 없지만 4층의 전망실에서의 조망은 사방 평야에서 멀리 산들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코마키야마는 그 후, 긴 에도시대 이후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나고야성에 살고 있었다)의 소유가 되어, 일반인은 출입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120년 전의 1902년 코마키 산성은 오와리 도쿠가와 가서 코마키 시에 기부하였으나 오히려 결과적으로 보존 상태도 좋고, 21세기 들어 발굴 조사에서 전술의 역사적 발견이 속속 되어 있습니다.
코마키야마 터에는 풍부한 화초와 들새,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여러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북쪽에서 동부분은 잔디밭으로 덮인 넓은 공간도 있어 산책이나 조깅에 아주 좋은 곳이죠!
남쪽에서 뻗어나오는 오오테미치와 겨드랑이에 주홍색 새들이 눈에 선명한 이나리 신사(稲荷神社), 심지어 중복동쪽에는 관음동(観音洞 술하는 마마관음(間々観音)이 있었습니다.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을 위해서, 현재의 장소로 이동했습니다)라고 불리는 힐링 스페이스도 있습니다.
또한 남쪽 중턱에는 '벚꽃 마장'이라 불리는 원지도 있고 특히 봄에는 그 이름 그대로 많은 벚꽃들이 만개합니다(이 근처, 코마키야마 북쪽 및 동쪽 사적 공원에서는 3월 하순~4월 초 쯤에 "코마키야마 벚꽃 축제"가 개최됩니다) 그리고 고마키야마 동쪽 지역인 사적 공원에서는 9월에는 "코마키야마 타키키노우(小牧山薪能)" 와 "코마키 노부나가 유메 야회(こまき信長夢夜会)"가 개최됩니다.
부디, 여러분의 눈으로 이 코마키 산성을 봐 주실 것을 강하게 추천합니다!
이동 수단
메이테츠 코마키 선 코마키 역에서 도보로 약 20분. 또는, 메이테츠 버스 또는 코마키 루프 버스로, 코마키 시청앞 하차.